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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21. 21世 〉29. <부정공>자헌대부공조판서월파공휘병기행장(資憲大夫工曹判書月波公諱秉琪行狀)
1. 문헌 목록 〉21. 21世 〉31. <부정공>귀은공휘병문행록(龜隱公諱秉文行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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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부정공>귀정공휘병두묘갈명(龜亭公諱秉斗墓碣銘)
龜亭公諱秉斗墓碣銘 昔者董生召南隱居以求其志行義以達其道山樵水漁入厨供旨上堂問起居此謂孝行之爲本且司馬伯康之撫背楊津之假寐兄弟之篤友也是以其行傳之今古爲美龜亭趙公豈非其人也歟謹按公諱秉斗字元七龜亭其號也趙氏之籍玉川系出于 高麗光祿大夫檢校大將軍門下侍中諱璋爲肇祖三傳諱元吉玉川府院君諡忠獻生諱瑜前副正生諱崇文資憲大夫兵曹判書諡節愍高祖諱顯龜曾祖諱基信祖諱鎭龍號湛軒廣施恩德有四面春風之頌考諱善鎬號述菴妣朔寧崔氏未能齋後孫士人相朝女咸安尹氏鶴儉女公之兄弟皆崔氏出公以 憲宗丁未十一月二十五日生于龜山世庄儀度莊重寡然不妄言笑才思瞻敏直斷無二入而事父祖出而接長上自齠齡己如老成人年十三丁内艱哀悼逾節弔者驚異二十一歲府君又得病畫夜不離側湯藥煎粥不委於人或暇則沐浴禱天及遭大故哀痛罔極血淚漣漣送終以禮時祖母在堂氣息或恐致傷添疾色必愉惋時時省之隣里以爲養生喪死各盡其道云事仲父如嚴父每事必禀而後行處從昆季居無物兒家門雍睦如也 高宗丙戌丁亥戊子三年間有前無大凶族戚朋舊之不能自食者與之同爨鄉黨老衰幼孤飢寒轉溝壑者計口賑之行乞旅流携橐而塡門者隨時資給少無離色是以賴而得活者未計其數莫不啣恩稱德于遠邇又致瀝于奉先曰蒙父祖之蔭不繼父祖之志可乎乃累代墓途之儀衛享火之物土或創或修極其週備無至餘憾又築一亭於外舍之傍巖石之上扁額曰龜頭亭朝夕棲息以吟風咏月遣懷隱居耕讀不求聞達修先貽後無忝家聲如斯而巳公有宿症醫云難治至是更延一日以家事托二弟曰吾將不起但恨早失慈母又不得終養繼母乃命何爾其寬慰老母養奉善之其他奉祀接賓恤貧敎子姪一如吾在日毋思分户待兒成立遂恬然而逝時 高宗庚寅五月十九日葬于所居之案山後移德奧案山庚坐原配瑞山柳氏瓚根女丙午生丙寅九月二十八日卒墓大光洞先祖墓右崗癸坐原配慶州鄭氏彦昌女辛亥生辛未十月九日卒墓住巖茅田酉坐原皆先公歿而無育更聘士人全義李氏熙燮女甲寅九月十一日生性孝純哲有女士之風擧四男見壺儀錄及本郡輿誌配水原白氏 壬戌十月生辛酉十一月五日卒墓白鹿村后中心嶝辛坐原長曰淵徹次曰淵彩三曰淵承季曰淵洙長房孫圭源休照休三次房孫休林三房孫圭泰圭詢圭峻季房孫休林休勝休純休準休林出系淵彩曾玄蕃衍不錄噫公生于積陰厚德之家有異於凡人者而篤日用彝倫之行抱兼善濟物之量其行懼或湮沒不傳其孫圭詢草其王考遺事抱其行錄而來示于不佞曰將竪石于羡門請余顯刻之辭余亦曾聞於公之懿德家風之純厚故不敢辭謹撮其狀之梗槩而書之如右銘曰 玉川名門有德其人孝友内篤德行外著耕釣供旨又好讀書修己接物率直無偉天不假命仁不得壽其才其資未試可惜欝彼可壯之松柏惟公體魄之攸托我銘昭之鐫此貞珉戒爾樵牧勿或毀損 歲光復後丁丑仲冬上旬 羅州 丁性杓 謹撰 귀정공휘병두묘갈명(龜亭公諱秉斗墓碣銘) 옛날에 동생 소남이 은거하면서 그 참된 의지를 기르고 의리를 행하여 그 도를 지키며 산에 나무하고 물에 고기잡아 부엌에 甘旨를 갖추고 上堂에 혼정신성의 예를 다하였으니 이를 효행의 근본이라 하고 또 사마 백강이 그 아우 옷이 춥지나 않을까 시시로 어루만지고 楊津이 그 형의 마음을 편안케 하기 위하여 거짓 잠자듯이 하였으니 이는 형제의 돈독한 우애라 하겠다. 이러므로 그 행실이 古今에 전해져 아름다움이 되니 귀정 조공이 어찌 그 사람이 아니겠는가 삼가 살펴보니 公의 휘는 병두요 字는 원칠이며 귀정은 그 호라 조씨의 본은 玉川이니 상계는 고려 광록대부 검교대장군 문하시중 휘 장으로 上祖를 삼았다. 삼전의 휘 원길은 옥천부원군 시호는 충헌이요 生의 휘 유는 전부정이요 생의 휘는 숭문이니 자헌대부 병조판서로 시호는 절민이시다. 고조의 휘는 현귀요 증조의 휘는 기선이며 조의 휘는 진용이요 호는 담헌이니 널리 은덕을 베풀어 사면 춘풍의 칭송이 있었다. 고의 휘는 선호니 호는 술암이요 비는 삭녕 최씨 미능 재 후손 사인 상조의 女요 함안 윤씨 학검의 女니 公의 兄弟는 모두 최씨 소생이라 공이 헌종 丁未 十一月 二十五日로 규산 世庄에 탄생하여 품행이 장중 과묵하여 쓸데없는 말과 웃음소리를 망녕되게 않았고 좋은 행동을 보면 하나같이 단행하여 안으로는 父祖를 섬기고 밖으로는 長上 대접하기를 어린 나이로 成人 같았다. 十三세에 모친상을 당하여 애도가 범절에 초월하니 조객이 모두 보통과 다른 행동에 놀랐고 二十一세에 府君께서 또 병을 얻어 주야로 그 곁을 떠나지 않으며 약달이고 죽 끊임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았고 혹 여가가 있으면 목욕하고 하늘에 기도하더니 마침내 초상을 당하여 애통이 망극하여 피 눈물을 흘리며 送終의 예를 다하더니 그 때 늙으신 조모가 계셨으니 기후가 혹 상심으로 병이 될까 두려워하여 유완한 얼굴빛으로 시시로 잘 보살피니 이웃이며 마을 사람들이 양생상사에 각각 그 도리를 다 하였다 이르렀고 또 仲父 섬김을 부친 같이하여 모든 일을 반드시 품한 후에 행하고 四村 兄弟와 같이 살면서 네것 내 것을 가리지 않으니 가문의 화목함이 이와 같았다. 高宗 丙戌丁亥戊子 三年간에 전에 없는 대흉이 있어 족척이나 친지간에 끼니를 잇지 못한자 있으면 더불어 같이 밥을 짓고 또 향당의 노쇠하고 어린고아 기한으로 마을거리에 떨고 있으면 수를 헤아려 곡식을 나누어 주고 걸인이나 나그네 자루를 메고 문앞에 구걸한 자 때때로 전곡을 베풀면서도 낯빛을 찌푸리지 않았다. 이러므로 공을 힘입어 살아가는자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으니 그 명성과 덕망이 세상에 펴졌다. 또 선영을 받드는데 힘쓰면서 말하기를 父祖의 그늘을 입어 父祖의 뜻을 잇지 못한다면 도리에 맞지 않다하고 이에 여러대 된 산소 곳곳에 석물이며 제위토를 혹 마련하기도 하고 혹 보수하기도 하여 두루 다 갖추어 여감이 없이 하였고 또 정자 한채를 집옆 암석위에 세워 이름하여 귀규정이라 하고 아침 저녘으로 기거하면서 음풍 영월로 쌓인 회포를 풀고 은거하면서 밭 갈고 글 읽어 도리를 지키며 선산을 수호하고 후손을 양육하여 가문의 욕됨 없었음이 이와 같았다. 公께서 신병이 있어 의원 말로 치료하기 어려워 길게 살지 못한다 하기에 하루는 가사를 두 아우에 부탁하여 말하기를 내 이미 병에서 일어나지 못하리니 다만 일찍 자모를 여의고 또 계모를 끝까지 봉양 못함이 恨이지만 내 명이 그런걸 어쩌겠는가 너희는 그 노모를 관대히 위로하여 봉양을 잘하고 그 밖에 제사 받듬과 손님 접대함과 가난한 사람 구원과 자녀질 교육을 나의 사는 날 같이하여 분가하기를 생각말고 아이 장성하기를 기다려라하고 염연히 서거하니 그때는 고종 경인년 五月 十九日이라 본 마을 안산에 장사하였다가 그 후에 덕흥 안산 庚坐에 이장하였고 배는 서산 류씨 찬근의 女니 丙午에 生하여 丙寅 九月二十八日에 卒하여 묘는 대광동 선조묘 우측 능선 癸坐이며 배는 경주정씨 언창의 女니 辛亥年에 生하여 辛未 十月 九日 卒하니 묘는 주암 모전 酉坐니 모두 公먼저 별세하여 양육이 없었고 다시 전의 李氏 희섭의 女를 맞이하였으니 甲寅 九月 十一日에 生하여 天性이 효우하고 순결하여 女士의 범절을 갖추었고 四男을 양육하였으니 호의록과 본군여지에 기록이 있다. 丁卯 正月 二十五日에 卒하여 묘는 주암면 한동 마을앞 庚坐이며 배 수원 白씨니 壬戌 十月 十五日 生하여 辛酉 十一月 五日 卒하여 묘는 백녹 마을 뒤 중심등 辛坐리 男長은 연철이요 次男은 연채요 三男은 연승이요 四男은 연수니 장방손에 규원 휘조 휘삼이요 차방손에 휘림이요 삼방손에 규태, 규순, 규준이요 계방손에 휘림, 휘승, 후순, 휘준이니 휘림은 출계연채하다 증손 현손은 너무 많고 어려 다 기록하지 않는다. 슬프다 公이 적음 후덕의 가문에 태어나 凡人과 특이함이 있어 日用의 윤리도덕을 돈독히 하고 음덕을 베푸는 도량이 있었으니 그 품행이 혹시 파묻혀 길이길이 전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그 손자 규순이 그 조부 유사의 사실을 기록하고 행장을 안고와 부재한 나에게 보이며 장차 묘소앞에 빗돌을 세운다하고 나에게 새길 글을 청하거늘 내 또한 일찍 公의 음덕과 가문 여경이 중후함을 들었기에 감히 사양치 못하고 삼가 그 행장의 내력을 대강 모아 右와 같이 썼고 銘에 曰 옥천조씨 명문가에 유덕한 그 사람이로다 효도와 우애는 가정에 독실하고 음덕과 선행은 밖으로 나타났네 밭갈고 고기잡아 부모봉양 극진하고 또 글읽기 즐겼네 몸 닦고 사물에 분명하여 솔직하고 거짓이 없었도다. 하늘이 命을 주지않아 인자한 사람도 수명은 얻지 못하였으니 그 재주와 자격을 발휘하지 못함이 애석 하도다. 저, 가장동 송백 울창한 곳에 오직 公의 체백을 길이길이 의탁하였으니 내 銘을 밝혀 빗돌에 새김으로 너희 초군이나 목동들은 행여 훼손 말지어다. 해 광복후 丁丑 十二月상순에 나주 정성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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